1950.1.10

(75세) 일본과의 어업협정 체결의 시급함을 국회에 요청.

 

1.22

미국에게 극동의 반공보루인 한국에 대한 원조의 필요성을 강조.

 

1.24

국회의 내각책임제 개헌안에 반대.

 

2.14

맥아더 초청으로 일본 방문, 재일동포 중소기업가에 대한 200만 달러 융자 약속.

 

3.4

내각책임제 개헌 여부는 국민투표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

 

3.10

농지개혁법 개정법 공포. 봉건적인 지주-소작인 관계의 사회를 자작농-자유인의 사회로 바꾸는 혁명적인 계기가 됨.

 

4.5

농지분배 예정통지서 발송 시작.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농지분배가 상당히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북한 공산군의 선동에 농민들이 현혹되지 않고 대한민국을 지지하게 됨.

 

4.7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5월을 넘기지 않아야 된다고 언명.

 

5.11

미국 원조만이 북한의 남침을 막을 수 있다고 언명.

 

5.16

조만식을 김삼용, 이주하와 교환하자는 북한의 제의에 동의.

 

6.17-23

한국을 방문한 덜레스 미 국무부 고문에게 미 극동방위계획에 한국도 포함시킬 것을 요청.

 

6.25

새벽4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오전10시30분 신성모 국방장관으로부터 남침 사실을 보고받음. 그러나 국방장관의 낙관적인 보고, 그리고 전면전 성격의 불확실성 등으로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를 보임.

 

6.26

새벽3시 사태의 심각성을 확신하자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동경의 맥아더 장군과 전화 통화. 그동안 한국의 무기 지원요청을 거부해 온 미국의 태도를 맹렬히 비난하고 즉각 지원을 요청. 동시에 워싱턴의 장면 주미대사를 전화로 불러 트루먼 대통령에게 즉각 지원을 하도록 지시.

 

6.27

새벽3시30분, 적에게 대통령이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측근들의 강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역을 출발해 오전 11시40분에 대구 도착. 그러나 너무 서둘렀다는 판단이 들어 도착 1시간도 안 되는 12시30분에 기차를 대전으로 돌리게 함.

 

6.28

아침에 대전에서 임시각료회의 개최. 서울은 이미 공산군에게 점령당한 상태였음.

 

6.29

수원에서 맥아더 장군과 만나 전쟁 수행에 대해 협의.

 

7.14

원활한 전쟁수행을 위해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에게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위임.

 

9.19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국군은 한만국경까지 진격해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발언.

 

9.28

유엔과는 상의 없이 국군에 38선 이북 진격을 명령.

 

10.12

수복된 원산을 찾아 제1군단 표창식 거행.

 

10.17

북한에 대한 직접 통치를 선언함으로써 유엔과 대립.

 

10.30

수복된 평양을 방문하여 열광적인 환영대회에 참가.

 

11.22

수복된 함흥 2차 방문.

 

11.24

유엔이 대한민국의 북한 통치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

 

12.8

50만 명 무장을 위한 지원을 미국에 요구.

 

12.11

밀려오는 중공군 앞에서 서울 사수를 명령.

 

12.24

서울시민에 피난 명령.

 

1951.1.3

(76세) 유엔휴전위원회(위원장 캐나다인 레스터 피어슨)는 중국과 소련을 달래기 위해 대한민국을 해체하고 한반도에서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세워야한다는 건의서를 유엔에 제출.

 

1.4

중공군에 서울을 점령당함(1.4후퇴).

 

1.12

일본군 참전 설에 대해 강력 반대.

 

2.5

38선은 공산군의 남침으로 이미 없어진 것이므로 북진 정지는 부당하다고 선언.

 

2.15

한반도 통일을 전쟁 목표로 분명히 밝히고 미국에도 통보.

 

3.24

한만국경까지 진격하기 전에 정전은 안 된다고 담화.

 

6.9

38선 정전 결사반대 선언.

 

6.27

소련의 정전안을 거부.

 

7.3

트루먼 대통령에게 휴전협상 반대 전문 발송.

 

9.3

일본의 재무장 반대.

 

9.20

휴전 수락 전제 조건으로 중공군 철수, 북한 무장해제, 유엔감시 하 총선거를 요구.

 

11.19

자유당 창당과 총재직 수락.

 

1952.1.18

(77세) 일본 어선의 침범을 막기 위한 평화선 선포.

 

6.25

6.25전쟁 2주년기념식에서 유시태가 대통령 저격 미수. 배후인물 김시현 의원 체포.

 

8.5

직선제를 통한 대통령 당선(부통령 함태영).

 

11.27

대만 방문

 

12.3

한국을 방문만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와 회담.

 

1953.1.6

(78세) 일본에서 요시다(吉田)수상과 회담.

 

1.26

국무회의서 해양주권선 수호 언명.

 

2.11

미국에 대해 중국본토 해안봉쇄를 요구.

 

2.17

대만 국민당 정부군의 한국전 참전 반대.

 

2.25

일본 선박의 한국 수역 출입을 적대행위로 간주한다고 성명.

 

4.11

휴전반대와 함께 국군 단독북진 성명.

 

4.29

중공군 철수가 통일의 선결 조건이라고 천명.

 

5.8

미 정부에 휴전 수락 거부 통고.

 

5.14

반공포로들이 이 대통령에게 석방을 진정.

 

5.31

포로 관리 위해 중립국 군대가 오면 격퇴하겠다고 성명.

 

6.3

휴전 전에 한미상호방위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제의.

 

6.6

미국의 원조가 없어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정부의 최종 입장 발표.

 

6.18

유엔군 포로수용소에 수용중인 2만7.000명의 반공포로 석방.

 

6.23

피어슨 유엔총회 의장이 이 대통령에게 반공포로 석방에 항의.

 

6.24

현 상태에서 휴전이 되면 국군은 유엔군 사령관의 휘하에서 철수하겠다고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 통고.

 

6.25

이 대통령에게 휴전을 설득시키기 위해 로버트슨 미 대통령 특사 한국 방문(7 월 11일까지 이 대통령과 14차례 회담).

 

7.12

한미공동성명(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② 미국은 경제, 군사 원조를 약속)

 

11.27

대만을 방문하여 장개석 총통과 반공통일전선 결성 발표.

 

12.9

(제네바) 정치회의가 1954년1월말까지 성공하지 못하면 전투 재개할 수 있다고 언명.

 

12.16

(제네바) 정치회의 개최 90일 이후에는 한국이 단독행위를 취할 수 있다고 성명.

 

1954.1.11

(79세) 미군 2개 사단 철수를 포함한 미 극동정책의 위험성을 경고.

 

1.30

일본의 재침 가능성을 경고하고 태평양동맹 결성을 촉구.

 

2.5

헐 유엔군사령관, 테일러 미8군사령관과 함께 한국군 증강 문제 협의.

 

2.12

공산군의 반란이 일어난 인도차이나 반도에 국군 파견제의.

 

2.13

주한미군 2개 사단 철수는 주한유엔군의 붕괴를 가져 올 것이라고 비난.

 

3.5

국제반공십자군 창설 제의

 

3.27

일제상품 몰수 지시

 

3.28

국군 증강 보장하면 제네바 정치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겠다고 미국에 통고.

 

4.28

일본의 반공연맹 가입 반대.

 

5.6

제네바 정치회의에 참석한 6.25전쟁 참전 16개국 대표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를 해체하고 국제연합 감시하의 선거를 통해 한반도에 통일정부를 수립하기로 합의. 로버트 올리버 박사를 통해 이승만을 설득시키려함.

 

5.12

이승만이 맹렬히 반대하자 대한민국 해체안을 철회.

 

5.21

제네바 정치회의의 쓸모없음을 강조.

 

6.15

진해회담서 한국군 2개 사단을 인도차이나 반도에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

 

6.16

이 대통령의 특사로 억류중인 일본인 선원 453명 석방.

 

7.25

미국을 국빈 방문해 열렬한 환영을 받음.

 

7.28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 미 대법원, 내각의 인사들도 참석. 소련의 침략 야욕을 강조하고 무력만이 대응책이라고 강조함으로써 33차례의 열렬한 박수를 받음.

 

7.31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의 회담 후 한국전 휴전은 사문화(死文化)되었다고 선언. 중립국 휴전감시위원회 소속 2개 공산국 대표의 축출을 미국에 요청.

 

8.1

공산국가들과의 결전은 불가피한 것이므로 시기를 미룰수록 미국에 불리함을 역설.

 

8.3

유엔총회에서 한국 통일에 대한 지원을 역설.

 

8.9

한일회담 재개용의 표명, 일본의 반성을 촉구.

 

8.30

일본에 대한 미국의 편파적 정책에 경고.

 

11.4

일본의 한국 재침략 망상을 비난.

 

11.14

미 국무부가 제안한 일본의 반공동맹 참가 반대 성명.

 

12.15

적성 중립국감시위원단 축출 언명.

 

1955.3.15

(80세) 대통령 암살음모자 이성재 외 6명을 검거.

 

4.14

원조자금에 대해 단일환율 적용을 주장.

 

6.7

기술자 해외파견안 재가.

 

6.20

일본제품 특혜수입 금지.

 

6.26

UP기자회견에서 국군 해외파견 용의 표명.

 

7.5

40개 사단 확보의 필요성을 역설.

 

7.7

미국 정책수립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유화적임을 경고.

 

8.13

휴전협정 즉시 폐기 요구.

 

8.14

중립국감시위원회 축출 운동의 지속을 선언.

 

10.7

대통령 암살기도사건 관계자 김동훈 등 8명 체포

 

12.25

염전 민영화 추진 담화.

 

1956.1.14

(81세) 정부기구축소 조속 실천 시달.

 

2.5

헌병 총사령부내에 김창용 중장 피살사건 전담 수사본부 설치를 지시.

 

2.13

일본의 공산국가들에 대한 타협정책에 경고.

 

2.21

국회 연설에서 판사의 월권행위에 유감표명.

 

3.5

자유당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불출마 서한 전달.

 

3.9

전국 각지에서 이 대통령 3선 출마 호소 궐기대회(자유당, 국민회, 애련, 노동조합 등이 주최).

 

3.13

이승만 재출마를 요구하는 대한노총의 정치파업.

 

3.15

이 대통령 재출마 요청 궐기대회(자유당 국민회 애련 노동조합 등이 주최).

 

3.17

덜레스 미 국무장관의 한국 방문. 이 대통령과 통일방안 협의.

 

3.25

공보실 통해 재출마 결의 담화.

 

3.30

학도징집보류 전폐 등 국민 개병의 원칙 표명.

 

4.12

선거전에 친공적 협상안과 친일적 협상안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언명.

 

5.12

휴전협정 조속 폐기 촉구 담화.

 

5.22

이승만(자유당)의 대통령 당선 공고. 부통령은 장면(민주당).

 

6.25

6.25동란은 미국의 오판에서 일어났고 중공군 철수가 통일의 선행조건임을 강조.

 

7.8

환율 고수 및 공무원 감원 단행 담화.

 

7.26

휴전협정은 이미 사문화되었음을 강조.

 

8.15

제3대 대통령에 취임.

 

8.16

첫 국무회의에서 군비 증강과 경제 부흥 강조.

 

9.1

미국의 극동정책은 패배주의와 유화주의로 전락했다고 비판.

 

9.13

유엔가입을 적극 추진하도록 임병직 대사에게 훈령.

 

9.17

기자회견에서 야당의 지나친 반정부적 태도를 비난.

 

9.22

대통령령으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공포.

 

9.30

한일관계 개선 조건으로 한국에 대한 재산권 청구 철회를 일본에게 요구.

 

11.4

동해안 시찰 도중 이북동포 구출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

 

11.7

소련에 항거한 헝가리 국민을 돕겠다는 의사 표명.

 

1957.1.6

(82세) 휴전협정 폐기와 군비강화 강조.

 

3.21

82회 탄신기념일을 맞아 우남장학회 발족.

 

3.23

제주도 송당목장 시찰

 

3.26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양자로 맞음.

 

3.28

미국과 서방측의 중동문제 치중에 경고.

 

4.2

유도탄 도입 등을 포함한 군사력 증강 역설.

 

4.19

김창룡 중장 암살 배후인물인 강문봉 중장에 대한 처벌을 무기징역으로 감형.

 

4.20

통화발행 억제와 정부기구 축소 지시.

 

5.14

공산주의의 위협을 경고.

 

6.15

로이터 기자회견서 한국군 군비 현대화 재강조.

 

6.17

서방측이 소련과 군비축소 타협에 이르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경고.

 

6.19

UP기자와의 서면 회견에서 북한의 남침 위험성을 경고.

 

7.28

휴전 4주년을 맞아 휴전협정은 무효라고 선언.

 

8.21

미국이 한국군을 감축하려면 현대장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

 

8.22

미국의 오키나와 영유가 타당함을 언명.

 

9.23

공산군의 재 남침 기도에 대하여 경고.

 

10.21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원조 삭감에 경고.

 

12.3

한글전용을 국무회의에서 지시.

 

1958.1.1

(83세) 이북동포에게 메시지.

 

1.21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

 

2.23

유엔군 철수 불가 성명.

 

3.8

북한에 납북된 KNA 민간여객기 기체 송환을 요구.

 

3.28

일본 기시(岸信介) 수상의 한일회담 재개 요망 친서에 동의.

 

3.31

미국 기자와의 회견에서 인도차이나에 한국군 파견용의 표명.

 

4.26

멘델레스 터키 수상에 대한민국 1등 건국공로훈장 수여.

 

5.19

일본 수상의 특사를 면담.

 

6.29

AP기자의 서면질문에서 유엔 감시 하의 북한 선거를 주장.

 

8.5

외신 기자와의 서면회견에서 국군 감축에 반대하고 장비 현대화를 강조.

 

8.29

아시아의 집단안전보장체제를 강조. 대만에 유재흥 연참총장을 특사로 파견.

 

9.13

대만과 중공의 충돌 사태(금문도-마조도 사태)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지지.

 

10.28

원자력 연구 지시.

 

11.1

운크라 업적을 찬양하는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 발송.

 

11.5

월남대통령의 초청으로 베트남 방문.

 

12.12

CBS기자에게 UN군 철수 불가,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을 언명.

 

1959.1.1

(84세) 북한동포들에게 방송을 통해 위로.

 

1.5

국가재산의 효율적 운영 지시

 

1.26

외신기자와의 면담에서 일본에게 문화재 반환을 요구.

 

2.19

일본의 재일동포 북송을 추방이라고 비난.

 

3.1

3.1절 기념식에서 일본에 대항한 안전보장이 긴요함을 역설.

 

3.25

남북통일을 위한 미국의 결단 촉구.

 

3.29

자유진영의 단결을 위해 미국의 강경정책이 필요하다고 미 국민에 호소.

 

4.15

미국과 소련의 정상회담이 쓸모없음을 강조.

 

6.8

제5차 아시아민족반공대회 대표들을 환영하는 시민대회에 반공 메시지 전달.

 

6.24

UPI 기자의 서면질문에 북진통일 강조.

 

6.25

미국 적십자사에 일본의 재일동포 북송 저지를 요청.

 

9.2

국무회의에서 학원잡부금 근절 지시.

 

9.10

국제 적십자 부위원장에게 북송은 적십자정신에 위배된다고 강조.

 

10.18

민주당 내분은 창피한 일이라고 비판.

 

11.11

AP기자 서면질의에 한국을 유도탄기지로 사용하는 아시아동맹의 필요성을 강조.

 

12.25 군대 안의 부정부패 근절을 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