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4.20

(66세) 호놀룰루에서 9개 단체가 모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외교위원장으로 임명됨.

 

6.4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 임명됨.

 

6

뉴욕에서 일본의 미국 침공을 경고하는「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를 출간, 12월에 진주만 기습공격이 일어나자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됨.

 

12.9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자 미 국무부 정치고문 스탠리 혼벡 박사, 대통령 루즈벨트, 국무장관 코델 헐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선전포고문과 임시정부 승인 요구 공한(公翰)을 전달함.

 

1942.1.2

(67세) 미 국무부의 실세인 알저 히스와 면담. 소련의 한반도 점령 의도를 설명하 고 미국의 대응책을 제안했다가 나중에 소련 간첩으로 판명된 알저 히스로부터 호되게 모욕을 당함.

 

1.16

미국인들로 한미협회(The Korean-American Council)을 창설. 미국의회 상원 원목인 프레데릭 해리스(이사장), 전 캐나다 대사 제임스 크롬웰(회 장), 언론인 제이 제롬 윌리엄스, 변호사 존 스태거즈가 중심인물. 임시 정부 승인과 무기지원을 목표로 활동.

 

2.27

미 국무장관 코델 헐에게 자신의 신임장과 임시정부의 공한을 제출.

 

2.27-3.1

워싱턴디시의 라파옛 호텔에서 한인자유대회(The Korean Liberty Conference) 개최. 이승만이 이끄는 한미협의회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공동 주최함.

 

3.23

미 국무장관 코델 헐에게 임정 승인을 요청.

 

5.5

이승만 후원조직인 ‘한미협의회’ 회장 제임스 크롬웰이 국무장관 코델 헐에게 임정 승인을 촉구.

 

6-7

미국의 소리(VOA) 초단파 방송망을 통해 고국 동포들의 투쟁을 격려.

 

9.30

미 육군전략사무처(OSS)의 로센봄 중위, 국무부 차관보실의 로스토우를 만나 중국내 한인 게릴라 부대 조직 문제를 협의.

 

10.10

미 육군전략사무처(OSS) 프레스톤 굳펠로우 대령에게 항일 게릴라 조직 제의.
10 한국인 선발요원 50명의 명단을 OSS에 통보.

 

12.4

12명이 선발되어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

 

12.7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한국인 군사훈련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냄.

 

12.31~
1943.2.16

미 국무장관 코델 헐이 만나 주지 않자, 만약 미국정부가 임정을 승인하지 않으면 전후 한반도에 친소 공산정권이 수립될 것임을 편지로 경고.

 

1943.2.17

(68세) 미 육군장관 헨리 스팀슨에게 편지로 항일 게릴라 조직계획서를 제시.

 

3.30

육군장관에게 하와이 한인동포들을 일본인과 같은 적성국민으로 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냄. 육군장관으로부터 다르게 취급하겠다는 회신을 받음.

 

5.15

미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극동에 대한 소련의 야욕을 상기시키고 임정 즉각 승인과 무기 지원을 요청하는 서신 발송.

 

8.23

제1차 퀘벡 회의에 참석한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 영국 수상에게 전보로 임정 승인과 군사지원을 요청.

 

8

한미협회와는 별도로 기독교인친안회(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를 조직. 한국 의료선교사 애비슨, 아메리칸대학 총장 폴 더글러스 등이 중심인물. 임시정부 승인과 무기지원을 목표로 활동.

 

12

이승만을 지지하는 대한인동지회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탈퇴.
12.19-22 가이 질레트 상원의원으로부터 임정 승인이 불가능하다는 서한을 받자, 몇 몇 동지들과 함께 항의 방문.

 

1944.8.21

(67세)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로 임정 승인 촉구.

 

9.11

제2차 퀘벡 회의에 참석한 루즈벨트와 처칠에게 카이로 선언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일본 패망 후 한국의 즉각 독립을 요구하는 전보를 보냄.

 

10.25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로 임정 승인을 촉구.

 

11

미 체신부가 태극기 마크가 그려진 미국 우표 발행.

 

1945.2.5

(70세) 미 국무차관 조셉 그루에게 한반도에 공산정권을 수립하려는 소련의 야욕 을 막는 방법으로 임정의 즉각 승인을 촉구하는 전보를 보냄.

 

3.8

미 국무장관 에드워드 스테티니우스에게 4월에 열릴 샌프란시스코 유엔 창립총회에 임정 대표를 초청하도록 요구.

 

3.9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노어 여사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면담.

 

5

유엔 창립총회에 참석하려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의 외교부장 송자문(쑹쯔원)이 좌우합작을 주장한 데 대해 맹렬히 반대.

 

5.14

얄타 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이 한국을 소련의 지배로 넘겨주기로 비밀협약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발표함으로써(얄타밀약설) 미 국무부와 충돌.

 

8.15

해방. 즉각 귀국하려 하였으나 반공주의자 이승만을 기피인물로 여기는 미 국무부의 방해로 2개월간 지연됨.

 

10.16

33년만의 귀국(김포 비행장 도착). 조선호텔에 투숙. 다음날 귀국 담화 방송.

 

10.21

허헌, 이강국 등 좌익들이 이승만을 방문하고 인민공화국 주석 취임을 요청.

 

10.24

숙소를 돈암장(敦岩莊)으로 옮김.

 

10.25

조선독립촉성중앙협의회 총재직을 맡음.

 

10.31

돈암장에서 박헌영과 회담

 

11.3

이승만의 통일안에 대해 공산당이 반대성명.

 

11.21

공산당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방송.

 

12.16

공산주의자들의 파괴행동에 경계가 필요하다는 방송.

 

1946.1.14

(71세)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매국노로 규정하고 결별 선언.

 

2.8

조선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를 통합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 총재가 됨.

 

2.25

미 군정청 자문기구인 남조선대한민국대표 민주의원(民主議院) 의장으로 선출됨.

 

3.25

프란체스카 여사 서울 도착.

 

5.11

지방 인사들이 자율정부 수립을 갈망한다고 언명.

 

6

하지 장군의 좌우합작위원회 참가 권유를 거부.

 

6.3

전북 정읍에서 남한임시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

 

6.29

독립정부 수립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민족통일총본부(民族統一總本部) 결성.

 

8.14

미 트루먼 대통령에게 카이로 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전문 발송.

 

9.10

독립정부 수립 문제를 미소공동위원회로부터 유엔에 넘길 것을 요구하기 위해 임영신을 미국에 파송.

 

9.12

돈화문 앞에서 공산주의자의 권총저격을 받음.

 

10.28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위배되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성명.

 

12.2

독립정부 수립을 UN에 직접 호소하기 위해 동경을 거처 미국으로 출발.

 

12.12

소련이 한국의 통일정부 수립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므로 남한에서 만이라도 과도정부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

 

1947.3.10

(72세) 미 정부 관계자로서는 유일하게 힐드링 국무차관보가 이승만의 독립정부 수립 안을 지지하는 발언.

 

4.1

귀국하기 위해 워싱턴디시 출발. 출발 전에 미 국무부로부터 귀국 방해를 당함.

 

4.13

동경을 거처 상해에 들러 장개석(蔣介石) 총통과 회견.

 

4.21

이승만의 귀국을 환영하는 성대한 국민대회 개최.

 

5.24

우익 59개 단체가 이승만의 신탁통치 반대 입장을 지지.

 

7.3

좌우합작을 주장하는 하지 중장과의 협조포기 선언. 가택연금을 당함.

 

9.16

독립정부 수립을 위한 수단으로 남한 총선거를 주장. 소련의 진의를 파악하게 된 미국 정부가 이승만의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

 

9.21

이청천(李靑天)이 단장으로 있는 대동청년단의 총재로 취임.

 

10.18

독지가들의 모금으로 마련된 이화동의 이화장(梨花莊) 사저에 입주.

 

11.14

유엔총회에서 유엔감시하의 한반도 자유선거 실시를 가결.

 

1948.1.8

(73세) 유엔한국 임시위원단 한국 도착. 이승만은 환영군중대회에서 연설. 위원단 단장 메논(인도)이 북한과의 좌우합작을 요구하는 발언을 시작하자 즉각 대회장을 박차고 퇴장함.

 

1.23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 입국을 유엔소련대표 그로미코가 거부.

 

3.30

선거 연기설을 비난.

 

4.1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은 소련의 목적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담화.

 

5.10

최초의 자유총선거(5.10선거)에서 지역구인 동대문구에서 당선.

 

5.31

제헌의회 의장으로 선출됨.

 

6.16

헌법기초위원회에 참석하여 대통령책임제 의사를 강력히 전달.

 

7.20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됨(186명 출석 가운데 180표 획득).

 

8.11

파리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 승인운동을 펼칠 한국대표단 파견 (장면, 장기영, 김활란)

 

7.24

대통령 및 부통령 취임식.

 

8.15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 파리에서 열릴 유엔총회에서 승인을 받기 위한 총력 외교에 돌입. 그러나 승인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

 

8.26

한미상호방위원조 협정 체결.

 

9.30

대통령 시정방침 연설.

 

10.8

미군철수 연기 요구.

 

10.13

40여명의 친북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외국군(미군) 철수 긴급 동의안 제출.

 

10.19

맥아더 주일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초청으로 일본 방문.

 

11.6

여수순천반란 사건에 따른 국가위기를 맞아 수습책을 국회에서 발표.

 

11.26

미군 계속 주둔 요청.

 

12.12

파리 유엔총회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간신히 대한민국 승인안이 통과됨. 대한민국의 와해 모면.

 

12.18

국회 폐회식에서 이북 도지사 임명 언명.

 

1949.1.6 (74세) 민족청년단(단장 이범석)을 해산하여 대한청년단에 통합하도록 지시.
1.7

일본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할 것이라고 언급.

 

1.8

대마도 반환 요구 기자회견

 

1.9

반민특위의 친일파 처벌에 신중해야한다고 담화.

 

2.18

유엔기구가 북한과 협상하는 데 대해 반대.

 

3.23

필리핀 퀴리노 대통령이 제안한 반공적인 태평양동맹안 지지.

 

5.20

대일배상요구 관철 주장.

 

6.9

일본의 어업구역 확대에 반대 성명.

 

7.1

한국에 대한 미국의 추가 원조 요청.

 

7.20

반공적인 태평양동맹의 체결 협의를 위해 퀴리노 필리핀 대통령, 장개석 총통을 초청.

 

8.8

이승만-장개석 진해 회담.

 

10.18

대통령관저에 폭발물 장치 사건 발생.

 

10.28

일본과의 강화조약 체결까지 임시통상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언명.

 

11.26

남북통일방안으로 북한 괴뢰정부 해체후의 총선거를 주장.

 

11.29

귀속재산인 일본인 주택 방매 담화.

 

12.16 군사원조에 비행기 포함을 미국에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