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11.10

(57세)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 국제연맹에 한국독립을 탄원할 전권대사로 임 명됨.

 

1932.12.23~
1933.1.4

국제연맹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 도착(리버풀,런던,파리 경유).

 

1933.1.26

(58세) 프랑스어 일간신문「주르날 드 제네바」에 인터뷰 기사 실림.

 

2.8

독립을 요구하는 공한(公翰)을 국제연맹 회원국 대표들과 기자들에게 배포.

 

2.16

「국제연맹」 방송시설을 통해 극동분쟁과 한국에 관해 연설.

 

2.21

제네바의 호텔 드뤼시 식당에서 아내가 될 프란체스카 도너(Francesca Donner) 양을 만남.

 

2.22

제네바의 프랑스어 신문「라 트리뷴 도리앙」지에 독립운동 기사가 실림.

 

2.23

베른의 독일어 신문 「데르·분트」도 활동 상황을 실음.

 

7.9-20

소련에게 독립지원을 호소해 보고자 모스크바 기차역에 도착하였으나(비엔나 경유) 즉시 퇴거당함.

 

8.10-16

프랑스 니스를 출발하여 뉴욕에 도착. 10월에 호놀룰루로 돌아옴.

 

1934.1.12

(59세) 워싱턴의「데일리뉴스」지가 이승만의 활동을 보도.

 

7.22

미 국무부의 정치고문 스탠리 혼벡 박사 면담하고 독립호소.

 

9.16

장기영과 함께 몬태나의 뷰트 방문.「몬타나 스탠다드」지가 기사 게재.

 

9.20

「로스앤젤레스 타임」지가 이승만의 독립운동 활동상을 보도.

 

10.8

뉴욕 랙싱턴 가(街)의 호텔 몽클래어에서 프란체스카 도너와 결혼.

 

1935.1.24

(60세) 부인과 함께 호놀룰루에 도착.「스타불리틴」지에 만주 한국인도 독일의 자르 지방인들처럼 민족자결의 원리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호소문을 실음.

 

1938.4.24

(63세) 호놀룰루 시 릴리하 가(街)에 ‘한인기독교회’ 건물 낙성.

 

1939.3.30

(64세) 제2차 대전의 발발 가능성이 보이자 워싱턴디시에서 구미위원회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호놀룰루 출발.

 

8.30

한국인과 중국인이 국제정세에 대해 몽매한 것을 한탄하며 한국의 독립에는 미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강조하는 편지를 김구에게 보냄.

 

12.10 「워싱턴포스트」지와 인터뷰에서 이청천 장군의 독립운동을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