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8

(25세) 한성감옥서에서 청일전쟁의 교훈을 다룬 중국책「중동전기본말」을 한글로 번역(1917년에 하와이에서「청일전기」라는 이름으로 출판됨).

1901.2~1904.7

(26-28세) 옥중 생활 속에서도 가명으로「제국신문」과「신학월보」에 수시로 논설을 실음. 어린이 죄수들을 교육하고, 옥중도서실을 운영. 국민계몽서인「독립정신」의 원고를 완성(그것은 서양의 선진문명을 배워 부국강병을 이룩할 것을 백성에게 호소한 책으로써, 원고가 미국으로 몰래 반출되어 1910년 3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출판됨).

1904.8.9

(29세)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특사로 감옥을 나옴(민영환, 한규설이 그의 사면을 위해 노력).

10.15

남대문의 상동교회 상동청년학원 교장직에 취임했으나 미국으로 가기 위해 곧 사임.

11.4 제물포항에서 미국으로 출국(독립보전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호소하기 위한 고종의 밀사 자격). 일본 고베를 거처 호놀룰루에 도착하여 윤병구 목사와 합류.

12.31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시카고를 거처 워싱턴디시에 도착,

1905.1.15 (30세) 「워싱턴포스트」지에 일본의 한국 침략을 폭로하는 인터뷰.

2 워싱턴디시의「조지워싱턴」대학에 2학년 장학생으로 입학.

2.20 한국에 선교사로 왔던 상원의원 휴 딘스모어의 주선으로 존 헤이 국무장관과 30분간 면담. 1882년의 ‘한미수호조약’의 거중조정 조문에 따라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헤이 장관의 죽음으로 허사가 됨.

4.23 워싱턴디시의 커베넌트 장로교회의 류이스 햄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음.

8.5 뉴욕 시 동쪽 오이스터베이의 사가모어힐 <여름 백악관>에서 윤병구 목사와 함께 시오도 루즈벨트 대통령을 잠시 면담하고 한국의 독립보전에 대한 지원을 요청.

9.10 시종무관장 민영환으로부터 격려 편지와 함께 300달러의 경비를 지원 받음. 두 달 후에 민영환은 을사조약 체결에 분개하여 자결함.

1907.6.5 (32세)「조지워싱턴」대학 콜럼비아 학부를 졸업.

6.23 워싱턴포스트」지에 이승만이 YMCA에서 했던 연설기사가 실림.

7.25 「에드베리 파크」「뉴욕모닝포스트지」에도 인터뷰기사가 실림.

8.1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다가 연해주로 돌아가는 이상설을 뉴욕에서 만남.

9 「하버드」대학 석사과정 입학. 1908년에 수료했으나 안중근의 이등박문 암살 사건과 전명운의 스티븐스 암살 사건으로 친일적인 미국인 교수들로부터 냉대를 받게 됨.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워 석사학위는 1910년 2월에 가서야 받게 됨.

1908.7.10-15 (33세)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열린 애국동지대표자대회(The Korean Patriots' Delegation Convention)에서 의장으로 선출됨. 스탠포드대학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단의 개회사. 「덴버 리퍼블리칸」지가 이 대회를 자세히 보도.

9 프린스턴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정치학과 국제법을 공부. 지도교수인 
우드로 윌슨 총장(나중의 대통령) 가족과 친밀한 관계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