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 4.2

(20세)신긍우(신흥우의 형)의 권유로 아펜셀러의 배재학당(培材學堂) 입학.

11.29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는다는 계획(춘생문 사건)이 탄로나 황해도 평산의 누이 집에 3개월간 피신.

1896.5

(21세)배재학당에서 서재필을 만나 서양 학문을 배움.

11.30 배재학당에서 양홍묵 등과 함께 <협성회>를 결성하고 미국식 토론회를 통해 개화-구국운동의 방향을 찾음. 이승만은 서기, 회장을 맡음.

1897. 7.8

(22세)배재학당 졸업식(방학예식)에서 졸업생을 대표해 ‘한국의 독립’이란 제목 으로 유창한 영어 연설을 함으로써 참석한 정부 고관들과 주한 외국 사절들로부터 극도의 칭찬을 받음.

1898.1.1 (23세)양홍묵과 함께 한글판 주간신문「협성회회보」발간하고 주필을 맡음. 한국 최초의 현대시 “고목가(枯木歌)”를 실어 열강의 침략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일깨우려 함.

3.10 러시아의 이권 침탈을 규탄하기 위해 독립협회(獨立協會)가 종로에서 제1차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자 가두연설로 인기를 얻음. 외부대신에게 항의하는 총대(總代)위원으로 뽑힘.

4.9 「협성회회보」를 한국 최초의 일간지인「매일신문」으로 발전시킴(사장 및 저술인의 직책을 맡음).

8.10 이종일과 함께 한글 신문인「제국신문」을 창간(편집과 논설 담당).

11.5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도입하려한다는 혐의를 받아 독립협회의 이상재, 남궁억 등 17인이 체포되자(익명서 사건), 이승만은 배재학당 학생 등 대중을 이끌고 경무청과 평리원(고등법원) 앞에서 철야 농성을 벌여 석방시키는 데 성공.

11.21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하던 중 수구파들이 보낸 보부상 2천여 명의 습격을 받아 유혈충돌이 일어남.

11.26 고종 황제가 독립협회를 달래기 위해 헌의6조의 실시를 약속하고, 이승만, 남궁억 등 50여명을 중추원 의관(종9품)으로 임명함.

12.23 고종이 만민공동회 해체로 방향을 바꾸자, 미국인 의사 해리 셔먼의 집으로 피신.

1899.1.9 (24세) 박영효 일파의 고종 폐위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됨(독립협회 사건).
5년7개월간의 감옥 생활이 시작됨.

1.17 이승만의 석방을 미국공사 알렌이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요구했다가 거부당함.

1.30 독립협회 동지 주시경(한글학자)이 몰래 건네 준 육혈포를 쏘며 동지 2인과 함께 감옥을 탈출했으나 곧 체포됨. 서상대만 중국으로 탈출 성공.

7.11 평리원(고등법원) 재판장 홍종우에게 곤장 100대와 종신형을 선고받고 한성감옥서에 수감됨. 탈옥 동지 최정식은 처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