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대통령을 기념하는 커뮤니티
“대한민국 건국과정” 독후감대회 시상식
(사)건국이념보급회와 (사)우남소사이어티가 <방패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연 [대한민국의 건국과정] 독후감 및 UCC 공모전 시상식이 10일 오전 11시 30분, 방패부대 사령부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은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 (사)건국이념보급회의 <이주영> 박사가 맡았다. (사)건국이념보급회는 앞으로도 군부대와 대학 등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건국과정]과 같이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재조명하는 공모전을 계속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모전 수상자> UCC 부문 1등 <우남상> 제52보병사단 <허태원> 상병 독후감 1등 제52보병사단 <문정환> 일병 UCC 분야 2등 제52보병사단 정훈장교 <황태성> 대위, 제52보병사단 211연대 소속 <노완원> 상병 독후감 2등 제60보병사단 정보통신대대 <공원배> 상병, 제52보병사단 본부근무대 <박상엽> 일병 UCC 부문과 독후감 3등 제56보병사단 기동대대 <김대건> 상병, 제56보병사단 본부근무대 <김정우> 상병, 제1방공여단 <정용인> 일병
제9차 연구모임 소식
7월 8일(월요일) 제9차 연구모임은 많은 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에도 15분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르네상스서울 호텔 23층 오키드홀에서 있었습니다. 이날 모임을 위해 만찬을 제공해 주신 이종호 회원(삼호개발 회장)과 좋은 포도주를 제공해 주신 윤의숙 회원(피코피 코리아 대표)에게 감사드립니다. 9차 연구모임은《월간조선》에 장기간 “이승만과 김구”를 연재해 오신 손세일 선생님을 모시고 “이승만 박사의 경제사상”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실물경제에도 해박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남소사이어티가 설립된 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3년 차를 향해 나아가는 금년의 본회 활동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본회의 상반기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생명의 길” 제작비 지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영상물 “백년전쟁”에 대응하여, 본회에서 건국대통령[…]
제8차 연구모임 소식
4월 8일(월요일) 제8차 연구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번 연구모임에는 ‘우남소사이어티’ 창립 이래 가장 많은 16분의 회원이 참석하셨고, 전영채 회장님께서 만찬을 제공해 주셔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연구모임을 위해 협찬해 주신 전영채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우남소사이어티’는 이 박사 재조명을 위해 애쓰는 단체와, 정통 현대사 및 이 박사의 통치 업적을 연구하는 신진들을 발굴하여 격려하는 등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후원해 왔습니다. 그동안 지원한 결과들이 하나씩 구체화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1. 새로운 회원 동화약품의 윤도준 회장께서 새로운 회원으로 참석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남소사이어티’의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2. 이승만 다큐 제작보고회 2월 총회에서 인준하여 집행이 끝난 ‘백년전쟁’에 대응하여 제작하는 이승만 대통령 다큐 제작비 지원으로 ‘제1편 생명의 길’[…]
제6차 연구모임 및 정기총회 소식
지난 12월 3일 본회 제6차 정기모임 및 내년도 예산 및 사업계획안 확정을 위한 정기총회가 있었습니다. 먼저 총회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및 사업계획안은 원안대로 만장일치 통과되었습니다. 2013년도에 군 병영 도서관에 정통 현대사 및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관련 도서 보내기를 새로운 사업으로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금년도에 두 분의 새로운 회원께서 가입하셨습니다. 그동안 남성 회원분으로만 구성되었는데, 이번에 새로 가입하신 회원은 청일점의 여성 회원이실 뿐만 아니라 젊고 재기 발랄한 분으로, 본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설립년도인 2011년에도 이승만 박사 관련 연구자 1명을 선정하여 장학금을 지급한 바 있습니다. 금년도 박사과정 학생 1명을 선발하여 현장에서 장학금 전달식을 거행했습니다. […]
개혁의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
1. 대륙문명권에서 해양문명권으로 50대 이하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왜곡되거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도 대표적인 이미지가 “보수, 수구, 친일, 반민주, 반민족” 같은 이미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승만은 가장 진보적이며 개혁적이고 민주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지도자였다. 이승만은 청년시절부터 낡고 무능하고 부패한 봉건왕조를 타파하고 서구식 민주사회를 만들고자 투쟁했다. 다시 말하면, 중국 중심의 대륙문명권으로부터 미국 중심의 해양문명권으로 역사적 전환을 하고자 했다. 이승만은 1875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의 조선사회는 어떠했는가? 조선왕조가 봉건적 전제군주제였던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조선은 해금정책을 통해 대외적으로 폐쇄고립정책을 폈다. 대원군은 외세배격 차원에서 천주교도들을 색출 집단적으로 학살했다. 전국의 유학자들은 중국의 성리학과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 천주교와 서양문화를 배격하자는 위정척사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동학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사회는 양반과 평민 및 천민으로 나누어진 철저한 신분사회였고 직업도 신분에 따라[…]
휴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예) 육군대장 김 재 창 9. 3 문제의 제기: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0년 6월 중순,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원용덕 헌병사령관을 불러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하고 있던, 반공포로를 모두 석방하라고 지시한다. 6월 18일 밤 수용소의 문이 열리자, 반공포로 대부분이 수용소를 탈출하여,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 포로 교환문제는 정말 뜨거운 감자였다.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전쟁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원래 소속되었던 나라로 송환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625 한국전에서의 반공포로는 이런 국제규약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북괴군이 불법남침으로 서울을 점령하고 나서, 길에 다니는 젊은이는 보이는 데로 잡아다가, 괴뢰군의 군복을 입혀 소위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전선에 보내었고, 이들이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 경우, 아무도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대부분 반공포로가 된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 입대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연구소 창립식 안내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btjwHl5CCGs&feature=player_embedded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창립식 안내영상
한국 근현대 역사 프로젝트와 이승만: 문명개화-반공건국-자유민주
I. 문명개화와 자유공화의 지향 – 중국중심적 페쇄체제의 일부였던 봉건왕조적 조선에 대한 비판적 극복의식과 대항활동을 통한 한국의 근대문명 지향적 개화활동의 중심. – 근대 이전의 한반도질서와 조선 = 중국 속방과 폐쇄체제 : 하멜의 표류 1653-66, 대원군 납치와 억류(1882-5), 위안스카이(원세개) 지배(1882-95), Port Hamilton(거문도, 1885-7)의 영국점령, 청-일전쟁(1895) 및 3국간섭과 고종의 俄館播遷(1896). : 청-일전쟁(1894-5)의 성격과 시모노세키조약의 조선 자주독립국 조항이 의미하는 한반도질서의 日本중심적 변화와 식민지화. 성환-아산-평양에서 펼쳐진 淸-日戰爭은 한국(6.25)전쟁-19만 사망/110만 참전-과 함께 한반도질서 및 체제에서의 중국의 퇴각과 재진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전쟁. – 이승만: 배재학당(1895-7)과 구미교사의 교육과 교류, <매일신문>(최초, 한-영문), <독립신문>, <제국신문>, 독립협회(1896), 만민공동회, *<독립정신> :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박영효, 남궁억, 양기탁, 민영환, : 자유, 민주,[…]
제5차 연구모임, 이승만은 자유민주체제의 세계적 브랜드
우남소사이어티 설립 이후 통산 5차, 금년 들어 3차 연구모임이 총 9분이 참석하신 가운데 7월 4일 이병무(아세아시멘트공업 회장) 회원님의 사옥 회의실에서 있었습니다. 이병무 회원님께서 이날의 모임을 위해 장소와 만찬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특히 저희 연구모임을 위해 며느님들까지 나오셔서 다과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병무 회원님과 며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5차 연구모임은 나라정책연구원 김광동 원장을 강사로 초빙하여 “한국 근현대 역사 프로젝트와 이승만”이라는 주제로 매우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광동 박사는 해방을 전후하여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국제사회의 미묘한 갈등과 국내 정치세력 간의 경쟁 등 불리한 조건 하에서 건국된 자유민주체제 대한민국에 대해 이승만 박사는 ”1948년 건국체제 및 민주주의 발전의 중심에 있었으며, 反전체주의 및 자유민주체제의 세계적 브랜드이자 대한민국의 가치이자 성공국가인 대한민국의[…]
“휴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김재창 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동북아 전체의 안정 보장과 질서에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환경을 만든 것” “일반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를 국제정치학자들은 Buffer라고 부른다. 완충지대의 나라라는 뜻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입지가 영락없이 그런 Buffer의 나라였다.” 이승만연구소는 휴전협정 제 59주년을 맞아 12일 오후 중구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홀에서 ‘휴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주제로 제17회 이승만 포럼을 개최했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재창 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예비역 육군대장)은 당시 상황이 휴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나라였기에 강대국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정전 반대의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당시 ‘안보적 양자관계와 다자관계’를 설명하면서 “전형적인 Buffer의 나라 : 주변 강대국들이 자기들끼리 흥정을[…]